근대 경제의 문을 연 영국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게사 1장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제1장 · 근대 경제의 문을 연 영국

Chapter 1 · Britain: The Cradle of Modern Economy


세계사를 돈의 관점에서 읽으면, 모든 사건의 출발점은 하나의 섬나라로 수렴된다. 대영제국. 18세기 영국이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꾸기 이전까지, 유럽의 패권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네덜란드의 손을 오갔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단숨에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파운드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신뢰받는 화폐가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작은 섬나라가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었는가. 그 답은 의외로 '해적'에서 시작된다.


■ 영국 경제의 기반이 된 해적

16세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에게 비밀 임무를 하달했다. 스페인 상선을 습격해 금은보화를 빼앗아 오라는 것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 지원 해적 행위였다. 드레이크는 세계 일주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스페인의 금을 잔뜩 싣고 왔고, 여왕은 그 수익금의 절반을 왕실 재정에 편입시켰다. 나머지 절반은 드레이크와 투자자들이 나눠 가졌다.

이 구조가 흥미롭다. 영국 왕실은 직접 모험에 나서지 않았다. 민간인에게 위험을 떠넘기고, 성공했을 때의 수익만 챙기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훗날 주식회사와 식민지 경영의 원형이 된다. 1600년 설립된 동인도회사는 이 구조의 완성판이었다. 왕실이 허가장을 주고 민간 자본이 위험을 감수하며 이익을 나누는 방식 — 근대 자본주의의 본질이 여기 이미 담겨 있었다.


■ 근대적인 조세와 은행을 한 발 앞서 정비하다

영국이 다른 유럽 국가보다 앞설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금융 시스템의 정비였다.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영국은 의회가 국왕의 재정을 통제하는 구조를 확립했다. 왕이 마음대로 세금을 걷거나 채무를 떼어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채권자들에게 영국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 차용인으로 만들었다.

1694년 설립된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은 이 신뢰의 결정체였다. 정부는 전쟁 자금이 필요하면 은행에서 빌리고, 은행은 국채를 발행해 민간으로부터 자금을 모았다. 국채는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안전한 투자처로 인기를 끌었다. 전쟁 비용을 분산시키고, 그 부담을 미래로 넘기는 이 방식은 이후 모든 근대 국가 재정의 기본 모델이 된다. 돈을 빌리는 능력이 곧 전쟁을 이기는 능력이었다.


■ 막강한 군사력이 곧 경제력이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먼저 일어난 이유로 흔히 석탄과 철, 증기기관의 발명을 든다. 그러나 오무라 오지로는 조금 다른 각도를 제시한다. 영국의 강력한 해군력이 없었다면 산업혁명의 성과도 영국의 것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가 창출되지 않는다. 그것을 팔아야 한다. 영국 해군은 전 세계 바닷길을 장악하며 영국 상선을 보호했고, 경쟁국의 무역을 방해했다.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무너뜨리고 자국 제품을 팔아치운 것도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경제적 강압이었다. 자유무역을 외쳤지만, 그 자유는 영국의 군사력이 보장하는 불평등한 자유였다.


■ 파운드, 기축통화가 되다 — 세계 최초의 금융 제국 탄생

19세기 중반 영국은 금본위제(Gold Standard)를 도입했다. 파운드화를 일정량의 금과 교환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로써 파운드는 금만큼 믿을 수 있는 화폐가 되었고, 국제 무역의 결제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런던 시티(City of London)는 세계 금융의 심장이 되었다.

당시 영국은 전 세계 무역량의 약 25%를 담당했다. 세계 곳곳의 국가들이 영국에 빚을 졌고, 그 빚은 파운드로 표시되었다. 국제 채권을 발행하고, 보험을 들고, 환율을 거래하는 모든 금융 행위가 런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군사력과 산업력, 금융력이 삼위일체를 이루며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의 황금기가 열렸다.


■ 제1차 세계대전이 불러온 경제 위기

그러나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영국 경제는 결정적인 균열을 맞이했다. 전쟁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영국은 미국에 막대한 빚을 졌고, 금본위제를 유지하기 위해 보유하던 금은 빠르게 소진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파운드의 가치를 전쟁 전 수준으로 되돌리려 했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이 결정에 강력히 반대했다. 파운드 가치를 높이면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실업자가 늘어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부는 국가 위신을 위해 강행했다. 결과는 케인스의 예언대로였다. 영국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졌고, 파운드는 기축통화의 자리를 서서히 달러에게 내주기 시작했다.

역사는 종종 가장 강한 자가 몰락의 씨앗을 스스로 심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이 세계 경제를 지배한 방식 — 군사력, 금융, 자유무역이라는 삼각편대 — 은 훗날 미국이 고스란히 물려받게 된다.


참고정보
· 도서: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지음 / 신정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2018)
· 잉글랜드은행 설립: 1694년 (윌리엄 패터슨 주도, 프랑스와의 전쟁 자금 조달 목적)
· 동인도회사 설립: 1600년 (엘리자베스 1세 칙허)
· 금본위제 도입: 1816년 (파운드화 기준, 이후 전 세계로 확산)
· 팍스 브리타니카: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종전(1815) ~ 제1차 세계대전(1914) 약 100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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