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36-그림소담: 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

간송미술36 편집자와의 대담 간송미술의 가치와 의미를 밝히다 01 신사임당 | 포도 우리가 아는 사임당의 이름에 가장 가까운 그림 02 이정 | 고죽 시련을 의지로 극복하고 탄생시킨 일세의 보물 03 이정 | 풍죽 세찬 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절개 04 이정 | 문월도 은은한 달밤을 더욱 밝히는 맑은 정신 05 이징 | 고사한거, 강산청원 왕실과 사대부가 사랑한 궁중회화의 품격 06 조속 | 고매서작 세속의 명리를 버린 자유인의 자화상 07 김명국 | 수로예구 최소한의 획으로 끌어낸 마음속 선심 08 이명욱 | 어초문답 세상 이치를 논하는 현자들의 꾸밈없는 대화 09 윤두서 | 심산지록 현세구복적 상징 속에 숨겨진 애달픈 현실 인식 10 정선 | 청풍계 진경문화를 주도한 선비들의 자취가 스민 맑은 계곡 11 정선 | 목멱조돈 시와 그림으로 화답한 평생지기의 우정 12 정선 | 단발령망금강 30년간 그리고 또 그린 금강산의 아름다움 13 정선 | 풍악내산총람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겸재 진경산수의 본질 14 정선 | 서과투서 노대가의 눈에 비친 따스한 일상 15 변상벽 | 자웅장추 동물 그림에서 이루어 낸 또 하나의 진경 16 유덕장 | 설죽 천재의 그늘에서 마침내 벗어난 노력가의 성취 17 조영석 | 현이도 조선 후기 풍속화의 본격적인 시작 18 심사정 | 와룡암소집도 세상이 버린 불우한 화가의 화흥 19 심사정 | 삼일포 관념산수에 진경화풍을 더하다, 조선남종화의 탄생 20 심사정 | 촉잔도권 화가의 인생을 닮은 험하고 아름다운 길 21 이광사, 이영익 | 잉어 입신양명으로 시작하여 효성으로 마무리된 그림 22 윤용 | 협롱채춘 고된 인생 속에 문득 스쳐 오는 봄바람 23 강세황 | 죽석 담백한 문인의 심의를 담은 묵죽화의 새로운 경지 24 강세황 | 향원익청 멀어도 좋지만 가까이 봐도 맑은 연꽃 향기 25 김후신 | 대쾌도 풍속화의 본질을 꿰뚫은 즐거운 그림 26 김홍도 | 마상청앵 ‘단원다움’의 진면목 27 김홍도 | 황묘농접 교감의 순간을 포착하는...

석유 이권 투쟁 : 아랍 사회의 반란-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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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제7장 · 석유 이권 투쟁 : 아랍 사회의 반란 Chapter 7 · The Oil Power Struggle: Arab Society Fights Back 1970년대는 아랍이 서방에 처음으로 '아니오'를 외친 시대였다. 한 세기 가까이 서방 석유 메이저들의 손아귀에 있던 중동의 석유 이권이, 산유국들의 집단 행동으로 급격히 재편된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자원 분쟁이 아니었다. 식민지 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고, 자국의 자원으로 자국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아랍 민족주의의 분출이었다. 그리고 그 분출은 지구 반대편 주유소에서 긴 줄을 서는 사람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 리비아 혁명과 카다피의 등장 1969년 젊은 장교 무아마르 카다피가 쿠데타로 리비아 왕정을 무너뜨렸다. 그는 곧바로 서방 석유 회사들을 압박했다. 리비아산 원유의 수익 배분을 50:50에서 55:45로 리비아에 유리하게 바꾸라는 요구였다. 메이저 석유 회사들은 처음에는 버텼지만, 카다피가 생산 감축 카드를 꺼내자 결국 굴복했다. 이 협상 결과는 중동 전체로 퍼져나갔다. 다른 산유국들도 같은 요구를 들고 나왔고, 서방 석유 회사들은 줄줄이 양보했다. 1970년대 초 OPEC 국가들은 외국 석유 회사들의 지분을 단계적으로 국유화했다. 100년 가까이 서방이 쥐고 있던 중동 석유 이권이 드디어 아랍인의 손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 이란 혁명과 제2차 오일 쇼크 1979년 이란에서는 팔라비 국왕의 친서방 왕정이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졌다. 호메이니 최고 지도자 체제가 들어서면서 이란의 석유 생산이 급감했다. 국제 유가는 다시 한번 폭등했다. 제2차 오일 쇼크였다. 같은 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은 중동에서의 소련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훗날 이 전쟁에서 지원했던 사담 후세인을 두 ...

패전국 독일이 일군 기적적인 경제 성장-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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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제5장 · 패전국 독일이 일군 기적적인 경제 성장 Chapter 5 · Germany: The Economic Miracle of a Defeated Nation 1945년 5월 독일은 완전히 무너졌다. 도시는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고, 화폐는 휴지 조각이 되었으며,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의 책임을 물어 연합국은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했다. 누가 봐도 독일의 미래는 어두웠다. 그런데 불과 10년 뒤, 서독은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대국이 되어 있었다. 독일인들은 이를 '라인 강의 기적(Wirtschaftswunder)'이라 불렀다. 기적의 뒤에는 냉전의 논리와 돈의 흐름이 있었다. ■ 왜 미국은 패전국 독일을 도왔는가 제1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은 독일에 가혹한 배상금을 물렸다. 그 결과 독일 경제는 초인플레이션과 대공황으로 붕괴했고, 그 혼란 속에서 히틀러가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씨앗은 제1차 세계대전의 잘못된 전후 처리에서 뿌려진 것이었다. 이 교훈을 뼈저리게 기억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마셜 플랜을 통해 서독에 대규모 원조를 제공하고, 배상금을 대폭 경감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서독이 공산화되면 소련의 세력권이 서유럽 심장부까지 뻗어오는 것이었다. 패전국 독일의 재건은 인도주의가 아니라 냉전의 필요에서 비롯된 전략이었다. ■ 통화 개혁과 사회적 시장경제 1948년 서독은 과감한 통화 개혁을 단행했다. 전쟁 중 남발된 구 라이히스마르크를 폐기하고, 새로운 도이체마르크(DM)를 도입했다. 교환 비율은 100:6.5였다. 하루아침에 예금의 93%가 사라진 것이다. 고통스러운 조치였지만,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화폐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었다. 경제장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는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를 도입했다. 시장의 자유를 보장하...

달러가 가져다준 미국의 모순-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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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제10장 · 달러가 가져다준 미국의 모순 Chapter 10 · The Dollar's Gift and America's Contradiction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달러를 찍어내면 세계가 받아주고, 빚을 져도 자국 통화로 갚을 수 있다. 그런데 이 특권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었다. 세계가 달러를 필요로 하는 한, 미국은 끊임없이 달러를 공급해야 한다. 달러를 공급한다는 것은 곧 무역 적자를 의미한다. 미국이 물건을 수입하고 달러를 지불해야 세계에 달러가 유통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다. 기축통화국의 특권은 동시에 만성적 무역 적자라는 굴레였다. ■ 무역 적자의 확대와 제조업 공동화 1970년대 이후 미국의 무역 적자는 구조적으로 심화되었다. 일본의 자동차, 독일의 기계, 중국의 소비재가 미국 시장을 잠식했다.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러스트벨트(Rust Belt)로 불리는 중서부 공업 지대가 쇠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달러 체제가 작동한 결과였다.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항상 강세를 유지하다 보니, 미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달러 패권의 수혜자는 금융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미국인들이었고, 피해자는 공장에서 일하는 미국인들이었다. 세계 최강의 통화를 가진 나라에서 중산층이 무너지는 역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 금융 자본주의로의 전환 제조업이 쇠퇴한 자리를 금융이 채웠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은 월스트리트의 황금기를 열었다. 파생상품, 정크본드, 레버리지 바이아웃(LBO) — 실물 경제와 점점 멀어진 금융 상품들이 쏟아졌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완성되었다. 이 금융 자본주의의 과잉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폭발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부실한 주택 담보 대출이 복잡한 금융 상품으로 포장되어...

아시아에서 등장한 강자, 일본-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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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제6장 · 아시아에서 등장한 강자, 일본 Chapter 6 · Japan: Asia's Economic Powerhouse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고, 국토는 잿더미가 되었다. 전범 재판이 이어졌고, 미군이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불과 30년 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어 있었다. 도쿄의 마천루는 뉴욕과 어깨를 겨루었고, '메이드 인 재팬'은 품질의 상징이 되었다. 서독과 마찬가지로 패전국 일본의 기적 뒤에도 냉전의 지정학과 돈의 논리가 작동했다. ■ 미국의 전략적 선택 —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미국은 처음에 일본을 철저히 무장해제하고 농업 국가로 만들 계획이었다. 재벌(財閥)을 해체하고, 군수 공장을 파괴하며, 전쟁 배상금을 물리는 것이 초기 방침이었다. 그러나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의 계산이 달라졌다. 아시아에 공산주의가 급속히 퍼지는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의 전략 거점으로서 반드시 안정되어야 했다. 미국은 재벌 해체를 중단하고, 배상금을 대폭 경감했다. 한국전쟁 특수(特需)로 일본 기업들은 전쟁 물자 생산을 맡아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였다. 서독이 그랬듯, 일본의 재건도 냉전의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통산성 주도의 산업 정책 일본 고도성장의 핵심에는 통산성(通産省, 현 경제산업성)이 있었다. 정부가 어떤 산업을 육성할지 결정하고, 자금과 규제로 방향을 잡아주는 방식이었다. 1950년대에는 철강과 조선, 1960년대에는 자동차와 가전, 1970년대에는 반도체와 전자 — 통산성은 국가 주도로 산업의 세대교체를 이끌었다. 저축률이 높은 일본 국민의 예금이 은행을 통해 기업 투자로 흘렀고, 기업들은 단기 이익보다 시장점유율 확대에 집중했다. 이 구조는 빠른 기술 습득과 생산성 향상을 가능케 했다. 도요타의 '도요타 생산방식(TPS)', 소니의 트...

아랍을 재건한 오일 머니의 위력-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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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제4장 · 아랍을 재건한 오일 머니의 위력 Chapter 4 · Oil Money: The Force That Rebuilt the Arab World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지도에서 존재감이 없는 나라였다. 수도 리야드는 모래바람 부는 변방의 도시였고, 대부분의 국민은 유목과 농업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 사우디는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되었다. 두바이는 사막 한가운데서 세계 최고층 빌딩을 세웠고, 쿠웨이트는 국민 1인당 소득이 미국을 앞질렀다. 이 모든 것이 땅 아래에 묻혀 있던 검은 액체, 석유 덕분이었다. ■ 석유는 누구의 것인가 중동에서 석유가 발견된 것은 20세기 초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아랍인들이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석유 회사들이 그 이익을 가져갔다. 이란의 영국-이란 석유회사(AIOC, 훗날 BP), 사우디의 아람코(Aramco) — 이 회사들은 아랍 왕실에 일부 로열티를 지불하는 대신 생산량과 가격 결정권을 모두 쥐고 있었다. 계약 조건은 노골적으로 불평등했다. 석유 수입의 대부분이 서방 기업과 주주들에게 돌아갔고, 산유국 정부는 부스러기를 받는 수준이었다. 이에 반발한 이란의 모사데크 총리는 1951년 석유 국유화를 선언했다. 영국과 미국은 경제 봉쇄와 CIA 공작으로 그를 실각시켰다. 석유는 아랍의 땅 아래에 있었지만, 그 돈은 서방으로 흘렀다. ■ OPEC 결성 — 자원으로 맞서다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베네수엘라가 모여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했다. 산유국들이 처음으로 뭉쳐 가격 결정권을 되찾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서방 석유 메이저들의 압력에 눌려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환점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이었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미국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했다. 아랍 산유국들은 즉각 미국과 서방에 대한 석유 수출 금...

또 하나의 자원대국, 소비에트연방-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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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제3장 · 또 하나의 자원대국, 소비에트연방 Chapter 3 · The Soviet Union: Another Resource Giant 냉전은 흔히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전쟁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돈의 관점에서 보면 냉전의 본질은 달랐다. 그것은 세계 최대의 자원을 가진 두 나라가 벌인 경제 패권 다툼이었다. 미국은 석유와 달러를 무기로 삼았고, 소련은 광활한 영토에서 뽑아낸 천연자원으로 맞섰다. 공산주의 혁명의 이상 뒤에는 언제나 자원과 돈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 공산주의 사상이 선진국에서 유행한 이유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19세기 내내 유럽의 노동자들은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거대한 빈부 격차 속에서 신음했다. 하루 16시간 노동, 아동 노동, 열악한 주거 환경 — 자본주의의 화려한 성장 뒤에 가려진 어두운 이면이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그 분노에 이론적 언어를 부여했다. 흥미로운 점은 공산주의가 가장 열렬한 지지를 받은 곳이 러시아나 중국 같은 농업 사회가 아니라, 영국·프랑스·독일 같은 산업 선진국의 지식인층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산업화가 가장 먼저 진행된 곳에서 자본주의의 모순도 가장 먼저 극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빈곤층의 분노가 아니라, 그 분노를 목격한 지식인의 죄책감에서 더 강하게 타올랐다. ■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구미의 경계심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서방 열강은 즉각 반응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이 반혁명 세력을 지원하며 내전에 개입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혁명 정권의 폭력성을 비난했지만, 실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공산주의가 자국 노동자들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아야 했던 것이다. 자본가들에게 소련의 존재는 살아있는 위협이었다. "너희 노동자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시범 사례가 지구상에 버젓이 존재하는 한, 임금 협상 테이블에서의 위치가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