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을 재건한 오일 머니의 위력-4장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제4장 · 아랍을 재건한 오일 머니의 위력

Chapter 4 · Oil Money: The Force That Rebuilt the Arab World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지도에서 존재감이 없는 나라였다. 수도 리야드는 모래바람 부는 변방의 도시였고, 대부분의 국민은 유목과 농업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 사우디는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되었다. 두바이는 사막 한가운데서 세계 최고층 빌딩을 세웠고, 쿠웨이트는 국민 1인당 소득이 미국을 앞질렀다. 이 모든 것이 땅 아래에 묻혀 있던 검은 액체, 석유 덕분이었다.


■ 석유는 누구의 것인가

중동에서 석유가 발견된 것은 20세기 초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아랍인들이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석유 회사들이 그 이익을 가져갔다. 이란의 영국-이란 석유회사(AIOC, 훗날 BP), 사우디의 아람코(Aramco) — 이 회사들은 아랍 왕실에 일부 로열티를 지불하는 대신 생산량과 가격 결정권을 모두 쥐고 있었다.

계약 조건은 노골적으로 불평등했다. 석유 수입의 대부분이 서방 기업과 주주들에게 돌아갔고, 산유국 정부는 부스러기를 받는 수준이었다. 이에 반발한 이란의 모사데크 총리는 1951년 석유 국유화를 선언했다. 영국과 미국은 경제 봉쇄와 CIA 공작으로 그를 실각시켰다. 석유는 아랍의 땅 아래에 있었지만, 그 돈은 서방으로 흘렀다.


■ OPEC 결성 — 자원으로 맞서다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베네수엘라가 모여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했다. 산유국들이 처음으로 뭉쳐 가격 결정권을 되찾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서방 석유 메이저들의 압력에 눌려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환점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이었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미국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했다. 아랍 산유국들은 즉각 미국과 서방에 대한 석유 수출 금수(禁輸) 조치로 맞받아쳤다. 이것이 제1차 오일 쇼크다. 국제 유가는 석 달 만에 4배로 치솟았고, 선진국 경제는 순식간에 마비 상태에 빠졌다.


■ 오일 머니가 바꾼 세계 지형

오일 쇼크 이후 아랍 산유국들에는 달러가 넘쳐흘렀다. 이 돈을 '페트로달러(Petrodollar)'라 부른다. 석유를 팔아 번 달러가 다시 미국 국채와 서방 은행에 예치되면서 기묘한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아랍이 석유를 팔아 달러를 벌고, 그 달러를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달러가 국제 석유 결제 통화로 자리를 굳히는 효과가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오일 머니로 도로, 병원, 학교, 왕궁을 지었다. 두바이는 석유 고갈에 대비해 금융과 관광으로 경제 구조를 바꾸는 데 오일 머니를 쏟아부었다. 걸프 산유국의 국부펀드(SWF)는 세계 주요 기업과 부동산을 사들이며 새로운 형태의 경제 권력으로 부상했다. 사막의 모래 위에 세워진 이 나라들의 번영은 지구 반대편 주유소에서 매일 결제되는 카드 한 장과 이어져 있다.


참고정보
· 도서: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지음 / 신정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2018)
· OPEC 창설: 1960년 9월, 바그다드 (사우디·이라크·이란·쿠웨이트·베네수엘라)
· 이란 석유 국유화: 1951년 모사데크 총리, 1953년 CIA 공작(아작스 작전)으로 실각
· 제1차 오일 쇼크: 1973년 10월, 유가 배럴당 약 3달러 → 12달러로 4배 급등
· 페트로달러 체제: 1974년 미국-사우디 밀약,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결제하기로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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