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이권 투쟁 : 아랍 사회의 반란-7장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제7장 · 석유 이권 투쟁 : 아랍 사회의 반란
Chapter 7 · The Oil Power Struggle: Arab Society Fights Back
1970년대는 아랍이 서방에 처음으로 '아니오'를 외친 시대였다. 한 세기 가까이 서방 석유 메이저들의 손아귀에 있던 중동의 석유 이권이, 산유국들의 집단 행동으로 급격히 재편된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자원 분쟁이 아니었다. 식민지 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고, 자국의 자원으로 자국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아랍 민족주의의 분출이었다. 그리고 그 분출은 지구 반대편 주유소에서 긴 줄을 서는 사람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 리비아 혁명과 카다피의 등장
1969년 젊은 장교 무아마르 카다피가 쿠데타로 리비아 왕정을 무너뜨렸다. 그는 곧바로 서방 석유 회사들을 압박했다. 리비아산 원유의 수익 배분을 50:50에서 55:45로 리비아에 유리하게 바꾸라는 요구였다. 메이저 석유 회사들은 처음에는 버텼지만, 카다피가 생산 감축 카드를 꺼내자 결국 굴복했다.
이 협상 결과는 중동 전체로 퍼져나갔다. 다른 산유국들도 같은 요구를 들고 나왔고, 서방 석유 회사들은 줄줄이 양보했다. 1970년대 초 OPEC 국가들은 외국 석유 회사들의 지분을 단계적으로 국유화했다. 100년 가까이 서방이 쥐고 있던 중동 석유 이권이 드디어 아랍인의 손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 이란 혁명과 제2차 오일 쇼크
1979년 이란에서는 팔라비 국왕의 친서방 왕정이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졌다. 호메이니 최고 지도자 체제가 들어서면서 이란의 석유 생산이 급감했다. 국제 유가는 다시 한번 폭등했다. 제2차 오일 쇼크였다.
같은 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은 중동에서의 소련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훗날 이 전쟁에서 지원했던 사담 후세인을 두 차례나 전쟁으로 쓰러뜨리게 된다. 중동의 복잡한 갈등 구도는 그렇게 돈과 석유, 이념과 종교가 뒤엉킨 채 겹겹이 쌓여갔다.
■ 오일 쇼크가 바꾼 세계 경제 지형
두 차례의 오일 쇼크는 선진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는 새로운 악몽을 안겨주었다. 경기 침체(Stagn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은 당시 경제학 교과서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케인스식 처방 — 경기 침체에는 재정 확대로 대응하라 — 은 오일 쇼크 앞에서 무력했다.
이 위기를 계기로 세계는 에너지 다변화를 추진했다. 원자력 발전이 급격히 확대되었고, 북해 유전 개발이 가속화되었으며, 절약과 효율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 자리를 잡았다. 일본이 연비 좋은 소형차로 미국 시장을 공략한 것도 이 시기였다. 아랍의 반란은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의 에너지 구조를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 도서: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지음 / 신정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2018)
· 리비아 혁명: 1969년 9월 카다피 주도 쿠데타
· 이란 이슬람 혁명: 1979년 2월, 팔라비 왕정 붕괴 · 호메이니 집권
· 제2차 오일 쇼크: 1979년, 유가 배럴당 약 13달러 → 34달러로 급등
· 이란-이라크 전쟁: 1980~1988년, 사망자 약 100만 명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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