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등장한 강자, 일본-6장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제6장 · 아시아에서 등장한 강자, 일본

Chapter 6 · Japan: Asia's Economic Powerhouse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고, 국토는 잿더미가 되었다. 전범 재판이 이어졌고, 미군이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불과 30년 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어 있었다. 도쿄의 마천루는 뉴욕과 어깨를 겨루었고, '메이드 인 재팬'은 품질의 상징이 되었다. 서독과 마찬가지로 패전국 일본의 기적 뒤에도 냉전의 지정학과 돈의 논리가 작동했다.


■ 미국의 전략적 선택 —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미국은 처음에 일본을 철저히 무장해제하고 농업 국가로 만들 계획이었다. 재벌(財閥)을 해체하고, 군수 공장을 파괴하며, 전쟁 배상금을 물리는 것이 초기 방침이었다. 그러나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의 계산이 달라졌다.

아시아에 공산주의가 급속히 퍼지는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의 전략 거점으로서 반드시 안정되어야 했다. 미국은 재벌 해체를 중단하고, 배상금을 대폭 경감했다. 한국전쟁 특수(特需)로 일본 기업들은 전쟁 물자 생산을 맡아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였다. 서독이 그랬듯, 일본의 재건도 냉전의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통산성 주도의 산업 정책

일본 고도성장의 핵심에는 통산성(通産省, 현 경제산업성)이 있었다. 정부가 어떤 산업을 육성할지 결정하고, 자금과 규제로 방향을 잡아주는 방식이었다. 1950년대에는 철강과 조선, 1960년대에는 자동차와 가전, 1970년대에는 반도체와 전자 — 통산성은 국가 주도로 산업의 세대교체를 이끌었다.

저축률이 높은 일본 국민의 예금이 은행을 통해 기업 투자로 흘렀고, 기업들은 단기 이익보다 시장점유율 확대에 집중했다. 이 구조는 빠른 기술 습득과 생산성 향상을 가능케 했다. 도요타의 '도요타 생산방식(TPS)', 소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워크맨은 이 시기 일본 제조업 정신의 결정체였다.


■ 플라자 합의와 버블 경제의 씨앗

1980년대 일본은 무역 흑자로 넘쳐났다. 미국 시장을 일본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잠식하자, 미국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1985년 미국, 영국, 서독, 프랑스, 일본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여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를 체결했다. 엔화를 대폭 절상해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낮추자는 것이었다.

합의 후 엔화 가치는 2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수출이 타격을 받자 일본 정부는 내수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대폭 낮췄다. 넘쳐난 유동성은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몰렸다. 도쿄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주가도 폭등했다. 이것이 1990년대 초 처참하게 붕괴하는 '버블 경제'의 씨앗이었다. 일본의 영광과 몰락은 모두 환율이라는 한 줄의 숫자 위에서 시작되었다.


참고정보
· 도서: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지음 / 신정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2018)
· 한국전쟁 특수: 1950~1953년 미군 군수 발주로 일본 기업이 벌어들인 외화 약 10억 달러 이상
· 플라자 합의: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 호텔 G5 회의
· 일본 버블 붕괴: 1990년 주가 최고점(닛케이 38,915) 이후 폭락, '잃어버린 10년' 시작
· 일본 GDP 세계 2위: 1968년 서독 추월, 2010년 중국에 추월당하기까지 약 42년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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