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 가져다준 미국의 모순-10장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제10장 · 달러가 가져다준 미국의 모순
Chapter 10 · The Dollar's Gift and America's Contradiction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달러를 찍어내면 세계가 받아주고, 빚을 져도 자국 통화로 갚을 수 있다. 그런데 이 특권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었다. 세계가 달러를 필요로 하는 한, 미국은 끊임없이 달러를 공급해야 한다. 달러를 공급한다는 것은 곧 무역 적자를 의미한다. 미국이 물건을 수입하고 달러를 지불해야 세계에 달러가 유통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다. 기축통화국의 특권은 동시에 만성적 무역 적자라는 굴레였다.
■ 무역 적자의 확대와 제조업 공동화
1970년대 이후 미국의 무역 적자는 구조적으로 심화되었다. 일본의 자동차, 독일의 기계, 중국의 소비재가 미국 시장을 잠식했다.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러스트벨트(Rust Belt)로 불리는 중서부 공업 지대가 쇠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달러 체제가 작동한 결과였다.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항상 강세를 유지하다 보니, 미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달러 패권의 수혜자는 금융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미국인들이었고, 피해자는 공장에서 일하는 미국인들이었다. 세계 최강의 통화를 가진 나라에서 중산층이 무너지는 역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 금융 자본주의로의 전환
제조업이 쇠퇴한 자리를 금융이 채웠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은 월스트리트의 황금기를 열었다. 파생상품, 정크본드, 레버리지 바이아웃(LBO) — 실물 경제와 점점 멀어진 금융 상품들이 쏟아졌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완성되었다.
이 금융 자본주의의 과잉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폭발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부실한 주택 담보 대출이 복잡한 금융 상품으로 포장되어 전 세계로 팔려나갔고, 그것이 무너지면서 세계 경제 전체가 흔들렸다. 미국이 만들어낸 달러 체제는 미국 내부의 모순을 세계로 수출하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 모순의 청구서는 전 세계가 나눠서 지불했다.
■ 빚으로 운영되는 세계 최강국
오늘날 미국의 국가 부채는 30조 달러를 훌쩍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진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다. 그런데 아무도 미국을 파산시키지 않는다. 달러가 기축통화인 한, 미국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망하면 달러를 사준 모든 나라가 함께 망하는 구조다.
이것이 바로 달러 패권의 본질이다. 미국은 빚을 많이 질수록 달러에 대한 세계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역설적 구조 속에 있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지배하는 이 기묘한 세계는, 돈의 본질이 '약속'이 아니라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 도서: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지음 / 신정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2018)
· 트리핀 딜레마: 1960년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제기한 기축통화의 구조적 모순
· 2008년 금융위기: 리먼브라더스 파산(2008.9.15)으로 시작, 글로벌 경기침체 촉발
· 미국 무역 적자: 1975년 이후 거의 매년 적자, 2022년 약 1조 달러 사상 최대
· 러스트벨트: 미국 중서부 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미시간 등 제조업 쇠락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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