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13/23] [전문]

●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부의 분배에 앞서 부를 창출해야만 한다. 실건 좋건 투자를 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부자들이고, 부자들은 시장의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런데 과거 많은 나라에서 계층 간의 질서를 이용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를 펼치면서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부의 창출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심하게 들릴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지 않고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도 나아지지 않는다.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파이 조각이 작아질지 몰라도 결국에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파이 조각의 절대적인 크기가 더 커질 것이다. 파이 전체의 크기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트리클라운 경제학으로 알려진 이 주장은 첫 번째 장애물에서부터 넘어지고 만다. 일반적으로 ‘성장을 촉진하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 그리고 ‘성장 감소를 부르는 빈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의미를 양분해서 말을 하는데, 실제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은 지난 30여 년의 세월 동안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결국에는 전체 파이가 커진다는 트리클라운 이론의 첫 번째 단계는 설득력이 없다. 또 두 번째 단계, 즉 윗부분에서 창출된 보다 큰 부가 아래로 흘러 내려 결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며든다는 이론도 트리클라운 현상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트리클라운 현상이 조금씩 일어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시장에 맡겨 두면 그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의 유령, 아니면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유령?
1차 대전 직후인 1919년, 소련 경제는 엄청난 곤경에 빠져 있었다.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식량 생산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새로운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경제정책(NEP, New Economic Policy)을 추진했다. 이 정책의 핵심 내용은 농업 부문에서 시장 거래를 허용하여 농민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신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소련 공산당은 둘로 갈라졌다. 공산당 중에서도 더 좌파적 성향을 지닌 레프 트로츠키는 신경제정책이 자본주의로 회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이 독학으로 경제학을 배운 천재 경제학자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였다.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소련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제조업 부문의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농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소련 경제에서는 농민들이 그나마 창출되는 잉여 생산물(한 경제에서 산출되는 총생산물 중 인구의 육체적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몫 이상 생산된 부분)을 사실상 거의 모두 소유,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를 늘리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농촌에서 사유 재산과 시장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정부가 농업 생산물의 가격을 낮게 매겨 제조업에 자원을 할 수 있는 농촌의 잉여 생산물을 남김없이 쥐어짜 낼 수 있으며, 정부 계획 경제 당국은 이 잉여 생산물들을 제조업 부문으로 옮겨 모두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이런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특히 농민들의 생계 수준을 떨어뜨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 극대화를 경제의 성장 능력을 최대화해서 모든 사람이 더 잘살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반면 스탈린이나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옛 친구이자 지적 라이벌인 니콜라이 부하린 같은 당내 우파 인사들은 현실론을 주장했다. 농촌 지역에서 토지와 가족에 대한 사유 재산을 인정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기본 정신에는 어긋나지만,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을 소외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하린은 “농민이라는 비루먹은 말[馬]을 타고 사회주의로 달려가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192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우파가 우위를 차지했고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점점 주류에서 밀려나다가 급기야 1927년 유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1928년이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권력을 독차지한 스탈린이 라이벌의 아이디어를 슬쩍해서 프레오브라젠스키가 주장했던 전략을 실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쿨라크(부농)의 토지를 몰수하고, ‘농업 집단화’를 통해 전체 농촌 지역을 국가의 통제 밑으로 귀속시켰다. 부농들로부터 몰수한 토지는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국영농장인 솝호즈(sovkhoz)로, 소농들의 토지는 집단농장인 콜호즈(kolkhoz)로 재편되었다. 콜호즈에 소속된 농민들은 농장 소유의 토지에 대한 명목상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는 사실상 국가의 통제를 받는 농장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프레오브라젠스키의 권고를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었다. 스탈린은 농촌을 많이 박쥐서 농민들의 잉여 생산물을 남김없이 쥐어짜 도시의 제조업 부문으로 옮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조업 부문 노동자들에게 생계비 이하의 임금을 지급해서 도시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 유지를 위해 공장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이 같은 스탈린의 전략은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농업 집단화에 저항하거나, 혹은 저항한다고 의심을 받아 노동수용소로 끌려간 사람 수가 수백만 명에 달했다. 또 농업 부문의 생산이 급락했는데, 이는 농촌에서 트랙터 대신 쟁기 따위를 끌던 소나 말 같은 가축의 수가 극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자기 가족이 몰수당할 것을 겁낸 농민들이 미리 도축해 버리거나, 곡물을 강제로 도시에 보내다 보니 가족에게 먹일 사료가 부족해졌던 것이다. 농업 부문이 이렇게 와해되면서 1932~1933년 사이 심각한 기근이 빚어졌고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스탈린이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다면 2차 대전 당시 동부 전선에서 독일군의 침입을 격퇴할 수 있을 정도로 신속하게 소련의 제조업 기반을 성장시키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독일군이 동부 전선에서 패하지 않았다면 서유럽은 독일군을 격퇴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본가 대 노동자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신분이 정해지고, 평생 그 상태로 살아야 하는 봉건적 질서는 18세기 이래로 유럽 전역에서 자유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은 출생 신분이 아니라 ‘성취한 것’에 따라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Thing 20 참조).
물론 이는 19세기에 살았던 자유주의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오늘날의 자유주의자들, 특히 유럽에 있다면 자유주의자라기보다 중도 좌파라 불렸을 미국 자유주의자들의 생각들로 많이 달랐다. 다른 무엇보다도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에 반대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여성은 지적 능력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아예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부를 축적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금욕’을 꼽았다. 노동으로 돈을 벌면, 그것으로 즉각적인 욕망을 채우기보다 투자를 해야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금욕적인 생활을 해 나가는 인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난한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당장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그것을 소비해 버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잠시 재미를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체 경제의 투자와 성장이 지체되어 더욱 가난해진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당시 자유주의자들의 정치 논리는 고전학과 경제학자들로부터 지적인 뒷받침을 받았다. 이런 고전학과 경제학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 바로 19세기 영국의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이다. 고전학과 경제학자들은 오늘날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달리 자본주의 경제가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자본가, 노동자, 지주라는 세 계급으로 구성하며,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행동하는 방식도 다르다고 보았다. 자본가들은 벌어들인 소득의 거의 전부를 투자하는데, 노동자나 지주들은 소득을 거의 소비한다는 것이다. 지주 계급에 대해서는 학자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리카도 같은 사람들은 지주를 소비만 하면서 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계급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 등은 지주 계급의 소비가 자본가들이 생산한 상품에 추가 수요를 발생시켜 자본가들을 돕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고전학과 경제학자들은 노동자들이 소득의 전부를 소비하기 때문에 국민소득에서 노동자들의 소득이 큰 부분을 차지할수록(즉 노동자들이 임금을 많이 받을수록) 투자와 경제 성장은 위축될 것이라고 보았다.
리카도 같은 열혈한 자유시장론자와 프레오브라젠스키 같은 극좌파 공산주의자가 만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둘이 많이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은 모두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극대화하려면 투자 가능한 잉여 생산물을 ‘투자자’의 손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의 다른 점은 이 ‘투자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잉여 생산물을 집중시켜야 하는 투자는, 자유시장론자의 경우에는 자본가 계급이었고, 극좌파 공산주의자의 경우에는 계획 경제 당국이었다. 오늘날 “부를 재분배하기 전에 먼저 부를 창출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궁극적으로는 잉여 생산물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를 위한 정책의 흥망
그러나 이런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태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에 현실화되고 말았다. 유럽의 대다수 국가와 서유럽 파생(Western offshoots, 유럽에서 건너간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이 비록 남아메리카 한해서이기는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고율의 세금 폭탄을 맞고 자본주의가 파멸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남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가난한 사람들도 그리 참을성을 잃지는 않았던 셈이다.
더욱이 정작 부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증과세가 부과되기 시작한 후에도 자본주의는 파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고율의 세금 덕에 더욱 강고해졌다. 2차 대전 이후 대다수의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누진세제가 퍼지고 사회 복지 지출이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니 부분적으로는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1950~1973년에 사상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했다(Thing 21 참조). 이 시기를 우리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부른다. 황금기 이전에는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은 연간 1~1.5퍼센트 증가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황금기에 1인당 소득은 미국과 영국에서 2~3퍼센트, 서유럽에서 4~5퍼센트, 일본에서는 8퍼센트 성장했다. 그 뒤로는 이 국가들이 이때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적은 없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자유시장론자들은 19세기의 케케묵은 논리를 다시 들고 나와, “투자 계급”에게 돌아가는 소득 몫이 줄어든 것이 성장 감소의 이유라고 세상을 설득했다.
1980년대 이후,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의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부자들에게 유리한 소득 재분배(upward income redistribution)’를 신봉하는 정부가 정권을 잡았다. 토니 블레어 시절의 영국 노동당이나 빌 클린턴 시절의 미국 민주당 같은 이른바 좌파 정당조차 공공연하게 이런 정책을 지지했다.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의 복지 개혁 정책을 도입하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형태의 복지 제도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목적이라고 선언하면서 이 움직임은 그 절정에 달했다.
실제로 복지 지출의 삭감은 단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Thing 21 참조). 그러나 고령화 추세 등으로 연금, 장애인 수당, 의료보험 및 노인들에게 사회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할 구조적 압력이 커졌는데도 이에 걸맞은 규모로 복지 예산이 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복지 국가의 성장에 제동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대다수의 국가들이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부자에게 소득을 옮기는 수많은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최고 소득세율 인하 등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이 시행되었다. 금융 탈규제에 따라 금융업자들은 투기 수익을 올릴 기회를 숱하게 누리고, 최고 경영진들은 전문학적인 보수를 받게 되었다(Thing 2, 22 참조). 금융 이외의 부문에서도도 규제 철폐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기업들은 더 거침없이 독점적 지위를 악용하고, 더 자유롭게 환경을 오염시키며, 더 쉽게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또 무역 자유화와 해외 투자의 증대로 기업들(심지어 공장을 해외로 옮겼다는 위험만으로도) 노동 임금을 낮출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예를 들어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사 보고서(The World of Work 2008)에 따르면 1990~2000년 사이 관련 통계 자료를 얻을 수 있는 20개 선진국 중 무려 16개국에서 소득 불평등도가 올라갔다. 나머지 4개국 중에서도 소득 불평등도가 의미 있을 정도로 낮아진 나라는 스위스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부문에서 선진국 중 최악이었던 미국의 소득 불평등도는 이 기간 동안 우루과이나 베네수엘라 같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수준까지 올라갔다. 핀란드나 스웨덴, 벨기에에서도 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증가하기는 했지만 이 나라들은 이전에 불평등 정도가 매우 낮았던 나라들이었다. 특히 핀란드의 경우는 너무 낮았다고 할 수도 있다. 대다수의 옛 사회주의 국가들보다도 소득 분배가 훨씬 평등했으니 말이다.
워싱턴에 위치하고 있는 중도 좌파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 Economic Policy Institute)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79년부터(데이터를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최근인) 2006년 사이, 미국의 소득 순위에서 상위 1퍼센트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에서 22.9퍼센트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소득이 상위 0.1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더 득을 봤는데, 이들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9년 3.5퍼센트에서 2006년 11.6퍼센트로 세 배 이상 늘어났다. 이렇게 된 것은 주로 최고 경영진들의 보수가 천문학적으로 올랐기 때문인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이들의 보수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Thing 14 참조).
앞서 언급한 국제노동기구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및 옛 사회주의 국가 65개국 중 같은 기간 동안 소득 불평등이 심해진 나라가 41개국에 달했다. 그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낮다고는 하지만 이들 국가 중 상당수가 이미 소득 불평등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득 불평등의 심화로 인한 악영향은 선진국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하다.
아래로 흐르지 않는 물
‘부자들에게 유리한 소득 재분배’가 정당화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만약 그 정책이 경제 성장을 촉진시켰다면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부자들에게 유리한 신자유주의의 개혁이 시작된 1980년대 이래 경제 성장률이 실질적으로 더 떨어졌다는 것이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1인당 평균 소득이 매년 3퍼센트 이상 증가했으나 1980~2009년 사이에는 매년 1.4퍼센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간단히 말해 1980년대 이래로 우리는 부자들에게 파이에서 더 큰 조각을 주면 그들이 더 많은 부를 창출해서 장기적으로 파이를 더욱 키울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부자들에게 더 큰 조각을 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들은 그렇게 받고 나서 실제로는 파이가 커지는 속도를 줄여 버렸다.
문제는 이른바 ‘투자자’(그것이 자본가 계급이든 스탈린의 계획 경제 당국이든)의 손에 소득을 몰아주는 것만으로는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돈이 손에 들어와도 그 투자가자가 투자를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나마 소련의 경우 스탈린이 계획 경제 당국인 고스플란(Gosplan)에 소득을 집중시키면 이렇게 모인 돈이 투자된다는 보장은 있었다. 비록 경제 계획의 어려움, 노동자 동기 부여 문제 등으로 투자의 생산성이 형편없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Thing 19 참조).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에는 이런 메커니즘이 없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는데도(즉 돈을 부자들에게 몰아줬는데도) 미국,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캐나다 등 G7 국가 모두와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에서 GDP 대비 투자 비율은 감소했다(Thing 2, 6 참조).
백보를 양보해서 부자에게 유리한 소득 재분배가 더 많은 부를 창출한다고 치자. (거듭 말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늘어난 소득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꼭대기에서 늘어난 부가 결국에는 아래로 ‘똑똑 떨어져(trickle down)’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지도 모르지만, 이는 보장된 결과가 아니다.
물론 이런 논리 자체가 완전히 명정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정부가 소득 재분배 정책을 폈다고 할 때 그 직후에 벌어진 현상(그것이 좋은 나쁜든)만 가지고 ‘정책의 효과가 있다, 없다’고 재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가지면 더 많이 투자하고 이에 따라 경제가 더 많이 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만 된다면, ‘부자들에게 유리한 소득 재분배’ 정책이 모두가 받는 몫의 크기를(상대적인 비율까지는 아니더라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냥 시장에 맡겨 두면 상류층의 부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정도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경제정책연구소(EPI) 조사에 따르면 1989년에서 2006년 사이 미국 총소득 증가의 91퍼센트가 소득 순위 상위 10퍼센트에게 흘러 들어갔다. 더욱이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한 몫 증가의 59퍼센트에 달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강력한 복지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의 경우에는 설사 ‘부자들에게 유리한 재분배’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이에 따른 성장의 혜택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 훨씬 쉽다. 세금과 소득 이전 정책이라는 강력한 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금 징수와 소득 이전이 시행되기 전의 소득 분배를 보면 벨기에와 독일은 미국보다 더 불평등하고, 스웨덴과 네덜란드는 미국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서 상당한 양의 물이 밑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복지 국가라는 이름의 전기펌프가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추진되기만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가 경제 성장까지 촉진한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과 같은 불황기에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가용 소득에서 더 많은 몫을 지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 가계에 복지 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10억 달러를 추가 지원할 때 얻을 수 있는 경기 활성화 효과는 같은 액수의 돈을 부자들에게 감세해 줄 때보다 더 크다. 더욱이 임금이 최저 생계 수준 혹은 그 이하가 아니라면, 노동자들은 추가 소득을 자신의 교육이나 건강에 더 투자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노동 생산성과 경제 성장이 촉진될 수 있다. 더욱이 소득 분배가 보다 평등해지면 파업이나 범죄가 줄어들면서 ‘사회적 평화’가 이루어지고 이는 다시 투자를 촉진한다. 사회적 평화가 이루어지면 재화를 생산하고 부를 생성하는 과정이 방해받을 위험이 줄어든다. 상당수의 학자들은 소득 불평등의 수준이 낮으면서 빠른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던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이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한 덕분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부자들에게 유리한 소득 재분배가 투자와 성장을 가속화시킨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이런 현상이 있었던 적도 별로 없다. 앞서 미국과 복지 정책을 잘 갖춘 다른 선진국들의 비교에서 알 수 있듯이 설령 성장률이 높아지는 경우에도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부가 아래로 분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단순히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부가 사회 전체의 혜택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국가는 각종 정책 수단(예를 들어 부자와 기업의 감세를 허용하는 대신 투자를 조건으로 제시)을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투자하도록 해서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하며, 복지 국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댓글
댓글 쓰기